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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산성

임진산성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 산 37번지, 구성읍 보정리 산 82-2번지에 해당하며 그 경계에 위치한 임진산(壬辰山) 해발 129.2m의 정상부에 자리한다. 지리좌표는 동경 127도 05분, 북위 37도 19분이다. 임진산은 서쪽의 광교산(해발 582m)이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의 말단부분에 입지하며 서남쪽으로 소실봉(해발188.2m)등 해발 100m내외의 산지가 이어지고 있다. 서쪽으로는 신봉천(新鳳川)과 성복천(星福川)이 합류한 풍덕천(豊德川)이 북류(北流)하는데 임진산의 동쪽을 북류하는 탄천(炭川)과 합류하는 한강으로 유입(流入)된다. 임진산의 주변은 이들 하천 주위를 따라 서.북.동쪽으로 넓은 선장지(扇狀地)가 펼쳐진 지형이다. 이 지역은 대부분 노년기 지형에 해당하는 저구릉지대로 낮은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질은 선 캄브리아기의 경기편마암복합체에 해당하는 흑운모편암과 규장편마암이 대부분 기반암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그 상위를 신생대 제4기의 충적층인 모래자잘층과 풍화잔류지층인 표토층, 붕적층과 매립층이 피복하고 있다.

임진산성에 대한 조사는 1997년 4월 30일 용인시 수지읍 삼성임대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조경사업(造景事業)을 위한 이목사업(移木事業)을 하던 중 조선시대(朝鮮時代) 총통(銃筒) 2점이 수습되어 신고됨에 따라 잔존(殘存) 유구(遺構)의 확인(確認)과 유물수습(遺物收拾)을 위한 긴급발굴조사(緊急發掘調査)가 경기도(京畿道)박물관(博物館)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유적(遺蹟)은 임진산성, 풍덕천성지(豊德川里城址), 예진산성지(芮陳山城址) 등으로 불려 왔으며, 옛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다가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구상(丘上)의 땅을 고른 것으로 주위(周圍) 약오십(約五十) 간(間) 풍덕천진지(豊德川陳址)라 칭함. 임진역(壬辰役) 일본군이 쌓은 것이라 함’이라 하였다. [전국유물목록(全國遺蹟目錄)]에는 ‘임진역 일본군의 축(築)’이라 하였으며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에도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축성(築城)으로 전한다’고 하여 모두가 임진왜란 때의 왜군(倭軍)이 쌓은 것으로 전하고 있다.

유적 북쪽의 광교산 일대는 임진왜란 당시 한양 수복을 목표로 상경하던 하삼도근왕병(下三道勤王兵) 6만명이 왜군(倭軍) 1,600명에게 참패를 당한 용인 광교산전투의 현장으로 추정되며 병자호란때에도 청군(淸軍)과의 교전이 있었던 역사적 현장이다.

한편 임진산성과 인접한 구성읍 보정1리 연원마을에서 성지(城地)로 추정되는 곳이 보고 된 바 있으며 또한 인근에서 관방유적으로 추정되는 석축유구(石築遺構)가 발굴조사되어 총통(銃筒)을 비롯한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이로 보아 임진산성 주변 2km내에 3개소의 관방유적이 밀집 분포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임진산성 동측편의 보정리(寶停里)에서 매장문화재로 “만력이십년(萬曆二十年)” 명(銘) 총통(銃筒이 신고된 것을 고려하면 모두 3개 지점에서 4개의 총통이 발견되어 이 지역이 임진왜란 당시 치열한 격전지임을 추정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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