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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및 명칭유래

동주민센터 > 풍덕천2동 > 풍덕천2동 소개 > 동유래 및 연혁

풍덕천2동 동주민센터 龍仁市 水枝區 豊德川洞

연혁

구갈동의 연혁
1914.
  • 행정구역 개편 시 수진면(수진면)의 토월리(토월리), 신리(신리), 정평리(정평리) 일부를 합처서 풍덕천리라 하였다.
2001. 12. 24.
  • 풍덕천리가 속한 수지읍이 2001년 12월 24일 수지출장소로 승격하면서 풍덕천 1, 2동으로 분할되었음.
  • 수지택지개발1지구와 기존 풍덕천 사거리 자연부락을 합쳐 풍덕천1동이 되었고, 나머지는 풍덕천 2동으로 분리.
2005. 10. 31.
  • 용인시에 3개구가 신설되어 구체제를 이룸
  • 행정기구설치조례에 의거 풍덕천2동에서 신봉동을 분리

명칭유래

풍덕내

풍덕천(川)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본내는 래(來)라고 하였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풍덕내라고 하고 있지만 이를 풀이하면 "덕이 크신 분이 풍덕에서 오신다"는 뜻인데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소를 용인에 모시게 된 기연을 맺어준 지명이라고 한다. 즉 포은 선생이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자객 조영규에게 피살 된 후 경기도 풍덕군에 일시 평장 되었다가 후에 선생의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천묘코자 하였다.

그 면례(緬禮) 행렬이 수지읍 풍덕래에 이르자 면례행렬 앞에 세웠던 명정(命旌)이 바람에 날려서 지금의 묘소자리인 모현면 능원리 문수산 하단에 떨어졌는데 남쪽으로 길을 떠나고자 하면 행여가 움직이질 않아서 할 수 없이 명정이 떨어진 곳으로 가자는 뜻이라 하여 그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행여가 움직였고 그래서 장사를 모셨기로 용인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이곳에 선생의 유택이 마련 되었다는 것이다. 풍덕에서 오신다(豊德來)고 하여 우연치 않은 지명대로 충혼의백을 맞이하였지만 1914년 지명 표기작업을 할 때 올래(來)자를 내천(川)자로 바꾸어 풍덕천(豊德川)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또 풍덕천이 물이 깊어 명주 한필이 다 들어 갔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이 풍덩풍덩 빠져죽어 풍덩내(川)라고 하던 것이 풍덕이 되었다는 일설도 있다.

정자뜰

조선시대 용인이씨 집성촌이던 곳으로, 지금의 신봉동 자연부락 입구에서 동보3, 4차아파트에 이르는 길에 정자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예부터 정자 또는 정자뜰이라 하였다.

정평

정자뜰지역의 넓은 지역을 말하는데, 넓다는 뜻으로 일제시대에 한문식으로 바꾼 이름이라고 한다.

신촌

정평에서 분리되어 나온 작은 마을로, 새마을이라는 뜻이다.

신정마을

신촌과 정평을 합한 합성어로, 수지2지구택지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생긴 이름이다.

진산마을

임진산이라는 산이름에서 나온 것으로 그 산터에 생긴 마을이라 해서 이름붙여졌다.

담당부서 :
풍덕천2동
전화번호 :
Tel : 324-8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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